제11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자 발표
월간 <현대시>가 제정하여 운영하는 <현대시작품상>이 제11회 수상자로 배한봉 시인(48)을 선정하였습니다. 본상은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한 시인에게 수여됩니다. 이미 제1회 김혜순, 2회 함성호, 3회 김영승, 4회 이향지, 5회 박주택, 6회 이원, 7회 김영남, 8회 채호기, 9회 위선환, 10회 조연호 시인을 수상하여 문단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 수상자 : 배한봉 시인
* 수상작 : 지구의 눈물 外
* 상금 : 500만원
* 심사위원
원구식(시인, 현대시 주간)
정과리(문학평론가, 연세대 교수)
박주택(시인, 경희대 교수)
오형엽(문학평론가, 수원대 교수)
* 수상자 특집 지면 : 월간 <현대시> 5월호
* 시상식 : 추후 9월 중 예정
[수상소감 / 배한봉]
시는 내가 어두울 때도 빛이었다
<현대시>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큰 상을 받게 되니 황송하고 감개무량합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저는 한동안 실감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하여 주점에 가서 혼자 소주를 반병쯤 비웠습니다. 봄이었지만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는 바람이 불던 저녁이었는데, 그때서야 제 마음속에 숨어 있던 보름달이 환하게 구름을 걷어내고 중천으로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영예의 상을 제가 차지해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현대시작품상>은 매달 전국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서 추천작을 선정해 <현대시>에 게재하고 추천작품에 대한 시평을 실어 객관성을 확보한 1년간의 작품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을 엄정하게 심사하여 수여되는 영광스런 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 수여되는 이 과분한 상은 저의 문학적 성과를 높이 평가해서라기보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더욱 열심히 절차탁마 하라고 분발을 촉구하는 격려의 채찍이라고 스스로 규정해봅니다. 그러자 순결한 시정신으로 오직 시의 길을 걸어오신 여러 선후배, 그리고 동료 시인들 앞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밤에도 제 영혼은 가도 가도 끝없는 시의 길 위에서 방황하느라 아직도 귀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귀가하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는, 고통으로 전신이 깡말라버린 육체를 거울 앞에 세워 봅니다. 문장들이 가로막는 시의 길이 거울 속에서 걸어 나와 뜬눈으로 밤을 샙니다.
시의 길은 이정표도 없이 사방으로 뻗어 있습니다. 이 길은 완성된 지점이 없습니다. 완성된 지점이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미답지라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날마다 수시로 앞으로, 뒤로,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길이면서 동시에 길 아닌 길을 갑니다. 물론 어떨 때는 거꾸로 주행을 하여 혼비백산 할 때도 있습니다. 시의 길은 언제나 뜨거운 피 흘림만이 격렬한 자기 내부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 뜨거운 선혈로 한 자 한 자 새겨 나간 문장만이 구원의 밧줄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시는 제가 어두울 때도 빛이었습니다. 한겨울의 눈보라를 견딘 나무만이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꽃향기에 취해 북풍한설 속에서도 꼿꼿하게 서 있던 깡마른 겨울나무를 잊는 우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내게 남겨진 벼랑이 있다면, 절망과 고통이 있다면, 빛과 어둠이 있다면, 노래와 생명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 시간들을 끌어안고 다시 터벅터벅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시인에게 낯선 길은 호기심과 상상력의 거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망설여지는 낯선 길은 오히려 축복이 눈부실 것입니다.
큰 힘을 안겨준 <현대시>와 많이 모자라는 시를 수상 작품으로 선해 주신 원구식, 정과리, 박주택, 오형엽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해야 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성실하게 이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은혜를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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